죽음은 언제부터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을까? | 현대의 장례 문화를 되돌아보다

2025. 12. 24. 08:14건강과 영양

요즘 장례는 참 깔끔합니다. 죽음의 자리는 더 이상 집이나 마을이 아니라 병원이나 전문 시설에서 이루어집니다. 장례식의 모든 절차는 상조회사가 대신 진행하고, 음식 또한 외부 업체가 준비합니다. 가족이 직접 해야 할 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데 있어 우리가 유일하게 준비해야 할 것은 돈뿐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이 깔끔함 속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기회입니다.

 

1. 일상에서 밀려난 죽음, 경험할 기회를 잃은 세대

과거에는 죽음이 삶의 일부였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생을 마감하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슬픔을 나누고, 고인을 기억하며,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를 되묻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병원과 시설, 장례식장은 죽음을 일상에서 철저히 분리해 놓았습니다.

그 결과,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특별한 사건이 되었고,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죽음을 대면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오래도록 지켜온 삶의 학습 과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2. 죽음을 외면하는 사회, 성장은 멈춘다

죽음은 불편합니다. 슬프고, 두렵고,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하고, 처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죽음은 ‘이해해야 할 사건’이 아니라 ‘신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을 외면할수록 우리는 삶을 깊이 이해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은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계기입니다. 이 과정이 사라진 사회는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성숙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정서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우리는 점점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서적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장례 문화의 변화가 던지는 질문

현대 장례 문화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상조회사의 도움은 분명 많은 가족에게 현실적인 위안을 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신해줌’이 아니라, ‘완전히 맡겨버림’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죽음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넘겨버렸습니다.

그 결과, 애도는 축약되고 감정은 정리되지 못한 채 남습니다. 슬픔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다른 형태의 불안과 공허로 되돌아옵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는, 삶의 무게 또한 가볍게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죽음은 언제부터 처리해야 할 문제가 되었을까요?

 

4. 죽음을 다시 삶의 자리로 초대해야 할 때

죽음을 자주 이야기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죽음을 완전히 밀어내지 말자는 제안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삶의 한 부분입니다. 죽음을 이해하는 사회는 삶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성찰할 줄 아는 개인은 하루의 선택을 더 신중히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할 것은 장례 절차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깔끔해진 장례 뒤에 남겨진 질문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다시 삶의 깊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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